김신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이야기’의 생성을 둘러싼 첨예한 대치를 다루고 있어서, 영화 주변에 작용한 요소들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특수한 제작 과정뿐만 아니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조건들도 함께 살펴보고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일반적인 픽션 영화나 소위 넷플릭스식 다큐멘터리에 비하면 굉장히 성기고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특권적 자리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서 대상에 관해 말하거나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 아닌, 다른 말하기 방식에 대한 탐색이 고스란히 형식에 반영된 것 같아요. 인순 씨가 함께 참여하면서 만드시기도 했고요. 어떤 영화적 규범을 뛰어넘으려고 했다기보다는 재현의 정치학에 대한 두 분의 고민, 영화적 말하기 방식에 대한 성찰이 형식을 조형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굳이 얘기한다면, 영화의 구조는 미학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액티비스트적 배경에서의 성찰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동령

약간 문제적이라고 생각되는 표현이 있는데요. (웃음) 일단 처음 질문하신 것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넷플릭스 다큐들이야말로 사실 굉장히 울퉁불퉁한 다큐라고 생각해요. 그런 다큐들이야말로 매끈하게 보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튀어나온 부분은 깎고, 구멍들은 안보이게 메우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감쪽같이 이야기를  단순화 시키는 경우가 많죠. 대체로 TV용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질문을 파고들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원하는 방향대로 일방적으로 끌고 가죠. 그러니까 몸이 있다고 치면 사지가 조금씩 잘려 있달까, 어떨 때는 팔이나 다리가 통째로 전부 없어진 경우도 많죠. 그런 다큐들은 진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아주 빠르게 편집이 되고, 기록이나 증거를 그래픽으로 처리해 버린 뒤에, 특정 방향으로 가기 위해 음악으로 강제로 끌고 가죠.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매끈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부분이 다 잘려져 있어요. 잘리고 남은 것들끼리 강력 본드로 접합이 돼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영화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하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 생겼어. 이쪽 방향에서 보면 요렇게 생겼고, 저쪽 방향에서 보면 이런 모양이지, 얘는 이렇게 만들어지는거고, 누가 만들고 있는거야’를 계속 보여주려는거죠. 그래서 통상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형식을 가지게 된 거죠. 그런데 우리가 흔히 내용과 형식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여전히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장마리 스트로브(Jean Marie Straub)가 영화 만들기는 조소와 비슷해서 먼저 아이디어가 있고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형태가 나오는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다시 말해서 어떤 작품도 형식을 만들기 위해서 내용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작가의 생각, 주제가 먼저이고, 그 뒤에 형식이 생긴다는 건데 저희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했어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구요. 우리의 어떤 문제의식이라는 것이 있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적합한 형식을 찾아다닌 거라고 봐야죠.  사람들이 자꾸 뜬금없이 우리가 어떤 미학 실험을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건 우리의 방식이 아니에요. 흔히 아트 계열의 다큐멘터리로 분류되는 영화들이 아트 씬에서 회자가 될 때 ‘새로운 비주얼’이란 표현을 듣곤 하는데, 우리는 사실 새로운 비주얼이란 게 있나 싶기도 하고요. ‘새로운 시각언어는 아예 없다’ – 뭐 이런 의미는 아니지만, 그런 걸 지향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거죠.  우리한테는 항상 문제의식이라는 게 가장 중요한 거구요. 그 문제의식에 전통적인 스타일의 관찰 다큐멘터리나 기승전결이 매끄러운 극영화는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거에요. 우리 영화의 방법론이란 게 만약 있다면, 그 방법론은 사후에 생긴 것이다. 그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액티비스트적 배경’ ‘성찰적 태도’ 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길어질 수 있는데(웃음) 일단 경태 씨는 출발할 때 좀 액티비즘적 태도가 있었다고 봐야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대학 시절에 단 한 번도 운동권 곁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예를 들어 운동권들이 학교에서 투쟁하면서 마이크 잡고 연설하는 걸 들으면 되게 죽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을 했죠. 물론 저항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된다는 생각은 당연히 있었지만, 운동권이 죽은 언어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게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영화에 대한 욕망만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영화를 제일 좋아하냐 물으면 루이스 부뉴엘이다- 이 정도었죠. 당시에 타르코프스키가 엄청 인기였는데, 저한텐 너무 관념적이라 별로였고 루이스 브뉴엘과 장선우의 희한한 리얼리즘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기지촌이라는 현장을 만난 거고, 이 현장 안에서 한 번도 단체사람들이 저한테 어떤 액티비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한 적은 없어요. 이 이야기는 좀 중요한데, 도대체 한국독립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할 때 액티비스트란 누구인가? 액티비스트-영화감독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자체를 돌아보고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아요. 특히 다큐 씬에서 사용하는 ‘활동가’라는 단어에 대해서 좀 엄격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제 이야기로 돌아가면, 제가 있었던 ‘두레방’이라는 곳은 전통이 오래된 곳이에요. 기독교 장로회에서 만든, 종교적 관점에서 시작 했지만 기지촌 여성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인권문제를 중심에 두었던 단체구요. 제가 처음 이 단체에 들어올 때 요구 받은 일들은 지금 말하는 소위 말하는 ‘활동가’ 들의 일이긴 했어요. 여러 가지 업무를 했는데 주로 상담을 받거나 ‘위기개입’을 하면서 여성들이 낙태를 해야 되거나,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싸워야 된다든지 하는 아주 위급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개입을 하고 금전적, 행정적인 지원을 하거나, 아니면  페이퍼를 쓰는 등의 활동을 했어요. 근데 저는 두레방 정식 직원도 아니었고, 그냥 월급을 받는 풀타임(Full-time) 프로젝트 스텝이었거든요. 두레방 사람들도 저를 프로젝트 스텝이라고 불렀지 ‘활동가’라고 부르지도 않았고요. 외부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때는 ‘활동가’라고 하면 좀 더 명확하게 자기 정체성을 걸고, 단체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운동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활동가라고 생각했죠.

박경태

그때 활동가라는 말이 있었나?

김동령

있긴 있었어. 있긴 있었는데 오늘날처럼 이렇게 넓게 통용되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김신재

좀 더 엄격한 의미로 사용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