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재

김동령

‘미선이 효순이 사건’ 으로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면서 거리로 나왔을 때 의외로 기지촌 언니들은 굉장히 분노했어요. 우리가 미군한테 찢겨져 죽어 나간 게 한두 번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더니, 중학생 애들은 순결하고 죄가 없는 애들이라 전 국민이 다 들고 일어나서 미군 물러가라 하고 우리는 인간이 아닌 거 아니냐… 이런 게 기지촌의 정서였죠. 운동권들이 윤금이씨 사진을 길거리에서 사용했을 때 사람들이 정말 충격을 받았잖아요. 그런데 윤금이와 똑같은 일을 했던 언니들 입장에서는, 원래 그 히빠리라는 게 뭐냐면 그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 단계 중 가장 위험에 노출되기가 쉬운 방식이라 잘못하면 살해당할 수 있어요. 인순 언니도 맨날 무슨 얘기를 하시냐면 오늘 내가 어떤 새끼를 만나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착한 미군만 골라내는 눈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윤금이처럼 비참하게 죽은 여자가 심지어 2천년대 넘어서까지도 기지촌에서는 꽤 있었어요. 암튼 사진 얘기로 다시 넘어가면, 소리소문없이 죽은 여자들과 윤금이씨 사건의 가장 큰 차이는 사진이에요. 우연히 사진이 유출되어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는 건데, 운동권이 사진을 사용한 방식은 이미 많이 비판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말을 보태지는 않을게요. 다만 윤금이씨 사진에서 중요한 건 그것을 ‘보여준다’라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그 사진은 우리한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거죠. 다시 말해 사진에 대한 맥락을 만들어야 된다는 거죠.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담론이지, 선정적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고요. 하지만 페미니즘 리부팅 이후 특히나 온라인상으로 유포되는 가해자들이 만들어낸 성 착취적인 이미지에 대한 경각심과 분노가 있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모두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소라넷의 이미지와 윤금이씨 사진은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읽어야 해요. 어떤 목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누가 생산한 이미지인지, 또 그 이미지는 세계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등의 맥락을 살펴봐야 하는데, 일단 금지와 삭제부터 시작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방식은  이미지를 그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고 권력에 복무하게 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어요. ‘보지 않을 권리’는 사실상 우리에게 가능한가부터 사실 냉정하게 되물어야 하고, ‘봐야 할 의무’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박경태

이거를 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이미 유럽은 홀로코스트 이미지로 이미 이런 문제를 겪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 논쟁이에요.

김동령

맞아요.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잔인하게 죽은 시체 사진을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것을 두고 논쟁이 있었죠.

박경태

고다르(Jean Luc Godard)가 했던 말인가. 홀로코스트 사진이 전면화되지 않고 금지되었을 때의 일인데, 어떤 사람들이, 왜 유대인 학살 사진에 굉장히 선정적이고 발가벗겨진 시체 사진들이 많잖아요. 그거를 조각 조각 필름을 만들어서 시체 포르노 좋아하는 변태 성욕자들 사이에서 홀로코스트 증거 사진이 포르노그라피로 은밀히 유통이 됐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것 자체도 유대인 그룹에서는 또 얼마나 싫겠어요.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잖아요. 그런데 홀로코스트에 대한 증명이라던가 역사적인 논쟁이 부족한 상태에서 알랭 르네(Alain Resnais)가 <밤과 안개>(1955)를 만들 때 그 필름들을 엄청 많이 수집하고 봤다는 거예요. 고다르 하고 르네하고 이 필름을 수집하고 보면서 이미지에 관해 토론도 많이 했다고 해요. 50년대에는 이 사진들이 한편에서는 포르노그라피가 되어 있고 한편에서는 증거로서 아직 인정이 안 되고 있는 상황. 그러니까 아직 공식적인 역사가 아닌 거였죠. 그리고 유대인과 집시 등 학살에 대해 영화와 증언, 연구 등이 주목을 받으면서 역사 재현의 공론장에 전면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죠. 근데 영화와 다르게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책은 최초에는 아무도 읽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시간이 많이 지나 점점점 읽기 시작했던 거고 유럽에서도 문자보다는 이미지가 더 선정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던 거죠. 이미지를 사이에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그 논쟁의 혜택은 결국 재현자들이 받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서 <쇼아>(1985)를 만든 끌로드 랑쯔만(Claude Lanzmann)감독 같은 경우는 분류를 하면 유대인 역사 쓰기 가운데 종교적 신비화에 속한 그룹이라고들 이야기하죠. 그러니까 홀로코스트는 인류의 역사에서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고통이라는 건데 결국 선택된 유대 민족만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이다 이런 태도인거죠. 가장 좀 파쇼적인 형태의 역사적 재현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고 완전 반대도 있고 하는데 랑쯔만 같은 경우는 어떤 형태의 이미지도 거부하고 오직 그 ‘유대인의 고통을 담은 음성-구술만이 진실의 재현이다’ 라고 하고 모든 이미지를 금지하라 명하죠. 거기에 반대해서 고다르가 도발하는 거 아니에요. 모든 재현은 가능하다. 그래서 가스실에 죽은 그 순간의 이미지도 있을 거다, 안 찾아서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랑쯔만은 진심 열 받아서 가스실 사진이 있으면 내가 가서 없애버릴 거다 그런 식으로 나오고. 그래서 이미지에 대해서 한쪽에서는 강한 금지, 우리 피해 당사자로서 금지하는 것을 윤리로 내세우죠. 근데 나는 그 당사자성에 여러 레이어와 계급이 존재한다는 거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현과 재현금지 간의 논쟁의 여파는 결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만들어졌을 때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때 이 이미지들을 보면서 참 신비로운 현상은 뭐냐면 아카이브로서 박물관 같은 곳과 같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전시되어 있는 이미지들을 보면서 우리가 포르노그라피적인 욕망이라든가 이상한 죽음에 대한 페티시적인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 그런 아우라를 만들어준단 말이에요. 아주 절묘한 역사적 합의가 이뤄진 곳이 박물관이에요. 마치 성화를 보면서 포르노그라피적 욕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그 욕망을 거세하고 억압해 온 학습된 욕망이죠. 반대로 포르노그래피는 따라서 은밀히, 범죄의 시선으로 봐야 욕망이 활성화되는 거구요. 이제 유대인 문제에 관해서는 이것에 대한 수많은 재현들이 있어왔고 또 역사적인 사실로서 엄중한 근거가 되어 있으며 유대인혐오는 법적인 금지로 발전하여 홀로코스트 기념관들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그들의 죽음과 이미지들이 그 목적에 부합해서 전시되어 있단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이미지들은 정당하고 어떤 이미지는 그렇지 않는가? 이걸 누가? 왜?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하느냐를 살펴봐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유럽에 갔을 때 딱 보면 처음 보고 온 사람들이 이렇게 충격을 먹긴 해요. 그 공포와 잔인함 때문에 하지만 공식 역사가 돼 세상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거죠. 네오나치 빼고. 근데 윤금이 사진으로 돌아와서 이 사진은 누가 극적으로 재현한 것도 아니고 범죄 아카이브 사진이란 말이에요. 기지촌 여성의 문제는 피해자로서 소명도 안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중에도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어느 누군가가 유대인 보고 너희들 피해자 아니야라고 하면 그거는 요즘에는 범죄자 취급 당하잖아요. 일종의 차별금지법 덕분에. 그런데 기지촌 여성에 관해서는 아주 활발하게 자발이냐 비자발이냐 이런 말을 공식적으로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유대인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죠.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한 논쟁과 투쟁이 필요해요. 문제는 그 사회의 시민일수록 피해자성은 빨리 획득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엄숙주의 같은 권위가 상황을 굴절시켜버리죠. 랑쯔만은 완전히 자신들의 피해성을 신의 영역으로 가져가서 재현 금지를 명명하게 된 거고 고다르는 그 권위에 도전하며 유럽에서 자칫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힐 위험이 있는데도 이미지 재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거구요. 유대주의 피해성은 자신들의 피해를 다른 폭력과 비교하는 것 조차 금지 시켜요. 만약 홀로코스트를 소련 수용소와 비교 연구하거나 코소보와 비교하면 바로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으려 들죠. 어디서 감히 이런 태도로. 아도르노처럼 찌그러져서 “홀로코스트 이후 시는 죽었다”? 아, 끝났다라고 했나? 암튼 비겁한 거죠. 그런데 재현을 좌지우지하는 것 이건 엄청난 힘이에요. 피해자의 위계가 이렇게 생겨나고 어디든 폭력이 발생하면 유대인 같은 피해자 지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공식 기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죠. 이런거에 비해 기지촌 여성은 비교 대상 자체가 안 돼요. 사실 당사자에게 힘이 없으니 외부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담론들을 만들어대죠. 그냥 사회적 담론의 소재밖에 안되죠. 금지냐 촉구냐 이 정도의 접근이 바로 소재주의라고 할 수 있구요. 하나 더 자발과 비자발도 소재주의라 볼 수 있죠. 내용은 다르지만 맥락은 유사해요. 기지촌 여성이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관문이 ‘네가 자발적으로 창녀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을 해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사회에서 그럼 강제로 끌려가서 유대인처럼 아니면 일본군 위안부처럼 끌려가서 성매매 여성이 되었다. 이것을 자기 경험을 구술 증언을 엄청해서 증명을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걸 누가 나서겠어요? 아무도 기지촌 여성에 대해서는 사회적 피해자다 국가폭력 피해자다라고 생각을 안 하는 상황에서 어떤 여성이 자신이 양색시였다 하며 공식 증언의 장에 나서겠어요? 여기에서부터 윤금이의 이미지는 어떤 의미인가 물어봐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이미지 자체가 가져오는 이미지의 유사성을 가지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아니면 인격에 관한 문제다라며 금지시키고 망실시키기 이전에 그것의 위치를 한번 이야기해 보자라는 차원에서 다시 소환을 한 거죠.

김신재

근래에 <사울의 아들>을 둘러싸고도 다시 논란이 일었죠.

박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