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재

폭력의 위계화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문득 해외 관객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를 보고 어느 정도로 영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궁금해요.

김동령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경우 부산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해외영화제에 직접 가서 반응을 볼 수는 없었고요. 그동안 우리 영화들이 해외 곳곳에서 상영되거나 개봉한 건 아니라서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독일과 일본 같은 경우는 미군 주둔의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기지촌의 고통에 대해 꽤 접속을 잘 한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요. 제일 접속을 못하는 곳은 미국이었던 것 같고요(웃음). 뭐 미국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 내 상영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대부분 다큐멘터리를 디스커버리 채널처럼 사회문제를 친절히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영화는 너무 이상하고 어려운 거죠. 그런데 MoMA에서 <거미의 땅> 상영했을 땐 좀 특이했는데 공식 Q&A자리에서는 질문이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 Q&A끝나고 상영관을 나가려니까 밖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저를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자기가 영화 본 감상을 막 이야기한다든지, 어릴 때 대만에서 봤던 미군부대와 기지촌 양색시들  풍경을 한참 하던 분도 있었고요. 일본에서는 야마가타와 도쿄에서 상영한 적이 있는데 영화가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기지촌 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의 정서가 있었어요. 워낙 미조구치 겐지가 그려온 게이샤들의 삶을 보면 일본의 정서를 알 수 있잖아요. 사실 일본에서 상영한 곳은 대부분 야마가타 영화제와 관련되어 있는 행사였고, 아시다시피 야마가타는 관객들 수준이 아주 높은 편이죠. 영화 자체에 대한 포용력도 넓은 편이긴 한데, 그걸 일본 전체 반응이라고 얘기할 순 또 없겠죠. 여튼 독일은 영화 자체에 대한 존중을 많이 해준다 이런 느낌이었다면, 일본에서는 주인공 인순 언니를 되게 좋아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한 해외 영화제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상영했던 2020년 로테르담이었는데, 거기는 반응이 실망스러웠죠. 일단 네덜란드 관객들은 저승사자나 ‘저승과 이승 사이’라는 개념 자체를 어려워 했던 것 같고, 기지촌의 역사와 이 영화의 표현방식 사이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접속이 안 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근데 사실 어딜 가느냐 만큼 어떤 관객층을 만나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반응은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상 해외영화제에서는 일반 관객의 반응보다 비평이 더 중요할텐데, 단순 리뷰 수준이 아닌 본격적인 언론 리뷰는 없는 것 같고 유일하게 있는건 아카데미 학술쪽 비평 뿐이죠(웃음). 그래도 <거미의 땅> 때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도 되고, 상도 받고 하는 거 보면 엄청 신기했죠. 사회적 소재를 다뤘지만 전혀 관습적이지 않은 다큐멘터리고, 영화를 이해하려면 어느정도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근데 해외 영화제라고 마냥 좋은 경험만 있는 건 아니에요. 도대체 우리 영화를 왜 뽑았을까?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도 솔직히 많았죠. 감독들은 제작 자체에 온 힘을 쏟다가 영화가 완성되고 영화제를 돌기 시작하면 상당히 나이브한 상태가 되거든요. 내 영화가 좋아서 뽑았나 보다, 해외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뭐 이런 순진한 생각들을 하면서 영화제에 가지만 상당히 뜨아한 시추에이션도 많이 마주치죠(웃음). 감독들은 이런 얘길 어디 가서 잘 하지는 않겠지만요. 한 번은 스페인의 한 영화제 경쟁부문에 가게 됐는데, 감독들을 초청한 저녁 만찬이 있었어요. 열 몇 개의 경쟁작 중에서 아시아 영화는 우리 작품 하나길래, 왜 우리 영화를 선정하게 됐냐고 옆에 앉은 프로그래머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미안, 니 영화 사실 안 봤어. 우리 영화제에 아시아 쪽 코디네이터가 있는데 너희 작품을 추천해서 선정한 거야, 우린 아시아 영화를 봐도 다 똑같은 것 같거든. 이번에도 중국 다큐 엄청 들어왔는데 그게 다 그거 같았어. 우린 아시아는 이해를 못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면전에서 얘기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 해외 영화제 코디네이터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야마가타의 아사코(Asako Fujioka)였어요. 그러니까 국제 영화제의 서킷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깨달았죠. 초대된 곳은 이제 막 아트 영화제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영화제였는데도 그랬어요. 우리 말고 벤 러셀(Ben Russel), 잼 코엔(Jem Cohen) 등의 실험영화 작가들을 초청하고 세미나도 열던 영화제인데도요. 그럴 땐 서구와 아시아의 비평권력차라는 것이 참 실감이 나기도 하고, 하여튼 어떤 행사에 나사 부품 하나로 왔다는 느낌도 들고 작가로서 모욕감이 들기도 하고요. 뭐 영화를 만드는 일은 우리의 ‘일’이고, 동시에 ‘사명’이고, 또 우리의 ‘취미 활동’이기도 한데(웃음) 창작은 그냥 우리에게 ‘일상’ 중 하나일 뿐인데 그것이 유통되는 세계로 들어가면 창작물은 ‘유통상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죠. 우리 손을 떠나 정말 ‘디스트리뷰션’의 세계로 진입하는 거겠죠. 그런데 유통은 반드시 자본과 연결되고, 정치적 힘들의 장 속에 들어가는 걸 의미하는데, 우리와는 전혀 상관은 없지만 그 나라의 마켓 상황이라든지, 아니면 그 영화제가 열리는 지자체의 어떤 욕망이라든지, 현실세계를 구성하는 권력과 힘의 장이라는 것이 있고, 거기에 우리가 ‘유통’되어 잠시 한 자리에 같이 있는 것 뿐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영화제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김신재

사실 영화제 프로그램팀의 입장을 헤아려보자면, 야마가타의 아사코 같은 분에게 프로그램 조언을 받는 것이 그나마 선정 권력을 분산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 같기는 한데요(웃음). 해외 필름메이커들에게도 그런 영화제에서의 경험이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프랑스에서 만난 프로듀서 한 분은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계신데요. 영화제가 형식적인 행사에 머물 때가 많아서, 초청을 받아서 상영할 때 가보면 막상 영화를 보지도 않은 프로그래머와 30분간 Q&A를 하다 나오는 경험이 계속 반복되니 염증이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팬덤이 아니라 공론이 필요한 영화가 있는데, 그런 기회가 좀처럼 마련되지 않으니까요. 그런 공회전의 감각이 영화제 배급에 있어서는 딜레마인 거죠. 영화제라는 공동의 경험이 이뤄지고, 미지의 영화가 미지의 관객과 만나는 장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면 영화제 외의 다른 대안이 있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나 여타 온라인 상영이 대화를 촉발하거나 만남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지금과 같은 영화제의 관행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김동령

영화제는 서로 프리미어 상영할 작품들을 서로 선점하려 하니,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섹션이 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어서 정작 영화에 대해 의미 있는 말을 하거나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하죠. 여기서 영화제가 이런저런 행사들을 문어발식으로 늘어놓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단기 스텝을 쓰고 버리는 구조도 개선이 안 되고 있고요.  감독 입장에서는 영화가 초대되어 개막식 레드카펫에 서고, 금방 말씀하신대로 30분짜리 GV 한 두번 하고, 파티에서 사람들 만나고, 그리고 시간 되면 다른 영화 좀 보고 이러는데, 저는 이게 점점 재미가 없어져요. 어떨 때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영화가 아니라 마켓에 참가하기 위해 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번은 지인이 IDFA에 갔다 온 얘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IDFA를 ‘영화제’가 아니라 ‘피칭하는 곳’이라고 많이들 알고 있잖아요 (웃음), 암튼 그 지인이 프로그램북을 보고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아가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프로듀서 한 분이 ‘아니 왜 이 시간에 영화를 보러가냐, 피칭 행사를 보러가야지’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인이 꼭 보고싶은 영화가 있다고 하니까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봐서 뭐하냐, 아직 안 만들어진 영화가 더 중요하지, 영화보지 말고 피칭행사로 오라’고 했다는 거예요(웃음) 영화제는 점점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유통 관계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운영에 개입하고 있죠. 생산보다 유통과 배급업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그런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영화제의 웃픈 풍경인 거에요. 그런데 이걸 비판해야 하는데 정말 아무도 안 보여요. 좀 웃기는 얘긴데, 얼마전에 고다르가 인도의 한 영화학교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했어요. 질문자가 혹시 이 코로나 시국에 영화의 미래에 대해 할 말은 없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고다르가 웃으면서 시네마와 코로나가 아주 비슷한 게 있다. 코로나는 바이러스이면서 동시에 질병인데, 질병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의 문제다. 코로나는 인류가 만들어낸 질병이지만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산이 되는지 그 메커니즘과 배경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오직 바이러스가 유통되는 경로에만 관심이 있다. 그게 바로 영화와 공통점이다. 이래서 빵 터진 적이 있어요.

김신재

코로나와 시네마의 공통점(웃음).

박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