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은 오클라호마에서 헬기를 타고 하와이로 이동했다(고 지금도 주장한다). 그리고 여전히 하와이에는 둥그렇게 생긴 호수는 있었어도 바다는 본 적이 없다. 호수에는 마치 한국의 판자집 같이 생긴 물위에 둥둥 뜬 집[1]들이 즐비했는데, 그곳에는 하와이 원주민들이 살았다. 인순은 그들에게 몸을 팔면서 근처 숲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그녀는 밤에는 미군부대 앞을 서성이면서 몸을 팔았고, 공원 화장실에서 몸을 씻었으며, 낮에는 숲에 들어가 야자수 아래서 잠을 잤다. 인순의 말에 의하면 하와이 원주민들은 돈을 후하게 줬다. 머리만 잘 굴리면 먹고 사는데 큰 문제는 없었고 날씨가 따뜻해서 비가 올 때만 잠자리를 걱정하는 정도 였다고 한다. 인순은 손님을 받을 때면 마치 자신의 포주가 지켜보는 것처럼 행동했고, 몸을 팔아 번 돈을 다람쥐처럼 숲 속 곳곳에 자신만 아는 곳에 숨겨두었다. 한번 씩 돈 많은 관광객을 만나는 날이면 와이키키의 큰 호텔에 들어갔는데, 그때 밀린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할 수 있었다. 인순은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을 미군부대 앞에 어슬렁거리면서 남편을 찾았다. 어느 날 리암이 부대 정문 앞에서 인순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그녀를 데리고 주차장까지 끌고 갔다. 도대체 너 같은 여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묻자 인순이 “아이 셀 마이 푸시! 보지 팔아 왔다 왜!”라고 큰 소리로 외쳤고, 그가 인순의 입을 틀어막고 자신의 차에 태워 어느 숲으로 끌고 갔다. 거기서 리암은 인순이 가지고 있던 소시키리[2] 카드를 빼앗고 혼자 차를 몰고 가버렸다. 인순은 걷고 또 걸었다. 노숙하던 공원을 찾기 위해 죽기 살기로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인순은 원래 자신이 잠을 자던 공원 숲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인순은 점점 술과 약에 취해 반쯤 실성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녀는 매일 야자나무 아래 앉아 자신이 누구이며, 왜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루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더니 ‘뺏벌’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고 한다. 드디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기억이 나자, 그녀는 복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악착같이 몸을 팔아 돈을 벌었다. 약 4,000달러 정도를 벌자 한인 브로커를 찾아 그에게 2,000달러를 건네주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와 신분증을 얻었다. 인순은 하와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김포공항에 내렸으며, 다시 택시를 타고 ‘뺏벌’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마을에서 살고 싶지 않아 근처 다리 밑에서 노숙을 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당시 미국에서 갓 돌아온 인순과 지나치다 눈만 마주쳐도 그녀에게 쌍욕을 듣고 멱살잡이를 당했다. 결국 인순은 미국에서 번 돈으로 뺏벌에 작은 방을 마련하고 다시 미군을 받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구부러진 성기를 가진 한 흑인 병사를 받다 아래가 찢어져 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갔고, 거기서 수술비로 미국에서 벌어온 돈을 모두 날렸다. 인순은 그 미군이 성기를 크게 보이려고 이상한 보조 장치를 삽입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다시 빈털터리가 된 인순은 그때부터 뺏벌 골목 곳곳을 누비며 미군을 끌기 시작해 나와 처음 만났던 2000년까지, 그리고 <거미의 땅>을 찍던 2008년에도 히빠리를 했으며, 최근까지 한국 할아버지를 상대로 파트너를 해주며 용돈을 벌었다.


<aside> 💡 [1] 하와이에서 만난 한인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1970~80년대 오아후 섬에는 호수 주변에 꽤 큰 규모의 수상가옥 같은 판자촌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와이키키 해변 인근에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슬럼이 있었는데, 주로 호수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앞에는 공원이 있었다고 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관광지 이미지 개선을 위해 하와이 주 정부에서 판자집들을 강제철거한 적이 있다. [2] Social Security number, SSN. 미 사회보장법 근거에 의해 미 시민권자, 영주권자 등 합법적 거주자에 부여하는 9자리 숫자이다. 기지촌여성들이 미군과 결혼을 하면 가족비자가 나오면서 미군기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복지 PX카드도 같이 지급된다. 기지촌 여성들은 SSN을 ‘소시키리’ 카드라고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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