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시 고산동 ‘뺏벌’은 ‘한번 빠지면 빼도 박도 못한다’고 해서 ‘뺏벌’이라 부른다는 말이 있다. ‘뺏벌’은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기지촌이 생기면서 새로 만들어진 이름으로, 실제 행정지명은 아니다. 배나무가 많이 자라 뱃벌로 부르다가 기지촌 여성들이 많이 죽어 뺏벌로 불렀다는 설이 가장 많다. 하지만 ‘뺏벌’이란 지명의 유래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이 곳 지명설화를 찾아보면 임진왜란 때 이시언 장군이 우관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많은 의병들이 수락산 아래 벌판에서 죽었다 하여 ‘뺏벌’이란 말이 있고,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지금의 의정부교도소 자리에 집을 짓고 배나무 농사를 시작하면서 ‘배벌’(이후 뺏벌로 경음화)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1919년 토지측량을 위해 일제가 만든 삼각측량 지도를 보면 과수원 표시가 있어 배나무가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런데 사실 뺏벌 지명에 관한 유래 중 어느것도 정확한 것은 없다. 일단 이시언 장군이 양주[1]에서 전투를 한 기록이 없고 그 무렵 배나무가 많았다는 기록 또한 찾기 힘들다. 지역 식생에 관한 조선총독부 자료를 보면 배나무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 유명한 먹골배는 전통을 되살리며 70년대 들어서 시작된 지역 특산품에 불과하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토지 측량이 끝나자 오랫동안 내려오던 순 한글 지명을 일본식 한자로 바꿔갔다. 마치 창씨개명처럼. 그런데 뱃벌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 지명은 없다. 그 말은 ‘뱃벌’이 오래된 지명 인지 아닌지 확언하기 힘들며 실제 지명인지도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 배나무가 자라 뱃벌이란 말로 돌아가면, 배나무는 햇빛이 잘들고 배수가 원활한 곳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다. 그 말은 현재 뺏벌 근처 보다는 의정부 교도소와 만가대 부근에 배나무를 심어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배나무가 자라 사람들이 배벌로 불렀는데, 문제는 현재 그 곳은 미군기지에 속한다. 신기하게도 일제강점기 지도에는 구체적인 지명이 보이지 않다가 1950~60년대 지도를 보면 미군기지 자리에 ‘뱃벌’이라 적혀있다. 그런데 70년대 이후 발간한 지도를 보면 ‘뱃벌’이 기지촌이 있는 산등성이로 그 지명이 옮겨 갔다. 실수라 생각했는데 생각하다 보니 지명의 이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뺏벌이 위치한 지형의 생김새를 살펴보면 수락산이 끝나는 지점이 절벽처럼 꺽어지며 들판과 바로 만나고 있고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낙하 하듯 여러 갈래 물길을 만들며 들판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산을 ‘백’, ‘맥’이라 불렀던 것과 벌판의 ‘벌’을 합치면 백벌, 맥벌로 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늘 그렇듯이 산세 모양을 본따 백벌로 부르다 배벌로, 그리고 배나무와 결합해 뱃벌로 또 질퍽질퍽한 뻘과 결합해 빼도 박도 못하는 의미가 추가되어 갔을 것이다. 그 지형이 수락산을 등지고 북향을 하고 있으니 비가오고 나면 물이 빨리 마르지도 않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런 추정도 가능하다. 한편 영화를 찍다 뜬금없이 한 주민이 다가와 여기가 왜 뺏벌인지 아냐며 여기가 원래 아무것도 없던 들판에 ‘빼’죽이 올라온 잡초만 있다해서 ‘뺏벌’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다.

1919년 발행한 15,000:1 지도로 근대적 삼각측량을 이용한 최초의 지도이다. 의정부 지역에 해당하며 왼편 밑으로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 경흥로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위해 토지측량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1919년 발행한 15,000:1 지도로 근대적 삼각측량을 이용한 최초의 지도이다. 의정부 지역에 해당하며 왼편 밑으로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 경흥로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위해 토지측량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지명에 관한 유래들은 단어의 의미와 발음의 유사성, 산세의 생김새 등이 결합해 사람들의 상상과 기억을 자극한 이야기의 결과이다. 그렇게 지명 설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상징을 부여한다. 그런데 뺏벌의 이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설화나 지명유래의 신빙성에 있지 않음을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오늘날의 ‘뺏벌’이란 이름은 사람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의미가 일차적으로 두드러진다는 점, 원래는 지금의 미군부대가 있던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기지촌이 생기고는 이 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뺏벌은 임진년 전쟁 때 많은 사람들의 죽었던 것을 상기시킨 동시에, 인순처럼 이름 없는 여자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가는 기지촌에 적합한 이름이 된 것이다. 즉 죽음의 기억이 만든 이름이며 그 강력한 의미가 지명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뺏벌은 그렇게 일제강점기 미군기지 자리에서 한국전쟁을 거치고 기지촌이 형성되면서 수락산을 마주본 왼편 산등성이로 옮겨간 것이다. 요컨대 죽음의 기억이 그런저런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왼편 밑 수락산과 중앙 위 부용산 사이에 벌판이 보인다. 두 산 사이 길을 중심으로 왼편 아래부분, 수락산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현재 미군기지가 주둔한 장소이다. 자세히 보면 과수원 표시가 있다.

왼편 밑 수락산과 중앙 위 부용산 사이에 벌판이 보인다. 두 산 사이 길을 중심으로 왼편 아래부분, 수락산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현재 미군기지가 주둔한 장소이다. 자세히 보면 과수원 표시가 있다.

Ⓒ웃음과바늘2022


<aside> 💡 [1] 1969년 양주에서 의정부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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